아카이브

[담양 문화예술포럼] 담양의 숨, 일상의 가치
  • [담양 문화예술포럼] 담양의 숨, 일상의 가치

    담양 문화파인더

문화정책팀
  • #담양의숨
  • #일상의가치
  • #지역문화포럼
  • #담양문화예술

[담양 문화예술포럼] 담양의 숨, 일상의 가치

1. 가을, 담양에서 시작된 첫 ‘숨’

2025년 11월 1일 오후,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붉게 물들어가는 날, ‘담양의 숨’은 한 해를 달려 잠깐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2025 담양 문화예술포럼의 제목은 「담양의 숨」이었습니다. 숨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을 지탱하는 가장 작은 움직임입니다. 이번 포럼은 담양의 사람과 공간, 그리고 오래 쌓여온 기억 속에 숨어 있던 그 ‘숨’을 다시 떠올려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포럼은 사라져가는 담양의 사람·공간·기억에 스며 있는 문화적 숨결을 조명하고, 치유와 회복의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지역문화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준비되었습니다. 행사는 공연과 강연 네 편, 질의응답으로 구성되었으며, 느껴진 분위기는 단순한 강연을 넘어 담양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2025 담양문화예술포럼 담양의 숨 행사장 전경. 조용한 공간 속, 담양의 사람과 공간, 기억이 하나로 이어질 순간을 기다린다.


포럼의 시작을 연 공연으로 아킴컴퍼니의 창작극 「다시 봄이 온다면 말야」 작품은 황유진㈜이랑고랑 대표가 어르신들이 직접 연극을 해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자 기획한 창작극에서 출발합니다. 김제 농촌마을에서 진행된 어르신 예술 프로젝트의 한 장면으로, 그 시절 어머니들의 어린 시절과 삶을 토대로 기획한 연극이었습니다. 꿈 많은 젊은 시절을 지나 평생을 어머니와 아내로서 살아오느라 스스로 돌볼 틈이 없던 어르신들을 주인공으로 기획된 연극을 보여주었을 때, 마을의 문화예술활동을 반대하던 어르신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술이 지역에서 필요한 이유, 지역 주민이 예술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여는 작은 움직임 하나가 새로운 참여와 변화를 시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창작극 [다시 봄이 온다면 말야] 작품을 보이는 아킴컴퍼니.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품은 이 연극은, 문화예술이 어떻게 마음을 열어가는지 조용히 보여주는 첫 숨이었다.


사람·공간·기억을 따라 펼쳐진 네 개의 강연은 서로 다른 시선이 모여 담양문화의 미래를 설계하는 하나의 구조를 완성한 시간이었다.


첫 번째 강연은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의 「어르신과 함께 예술로 엮은 마을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는 한 마을 이장님이 돌아가신 뒤 남겨진 수많은 사진들, 그 사진을 정리하는 일을 계기로 예술가를 찾게 되었고, 그렇게 황유진 대표와 마을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황유진 대표가 선택한 방식은 ‘주민 스스로’라는 원칙이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벽화를 채우는 것이 첫 출발이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물감과 붓을 들고, 재료를 다루는 법과 그림을 바라보는 법을 하나씩 나누어가는 과정에서 황유진 대표는 어르신들 안에 있는 잠재력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르신들의 작품이 마을 곳곳의 조형물로 남고, 그 작품을 보러 사람들이 찾아온다면 그 자체가 지역 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김제에서의 사례는, 담양에서도 ‘사람과 예술이 함께 마을을 바꾸어가는 방식’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였습니다.

두 번째 강연은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의 「로컬 기반 문화 창업 전략과 사례」였습니다.
감자꽃스튜디오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자, 지역 주민의 문화예술공간이며, 농촌관광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곳입니다. 강연은 “왜 로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지방, 지역, 지구, 마을을 아우르는 개념으로서의 로컬은 “마을”이라는 단위가 다시 중요해지는 시대적 흐름에 브랜드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선철 대표는 카페, 빵집, 레스토랑, 공공미술 등 생활 속 창업 아이템들이 지역의 전통·예술·생활과 연결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힘을 갖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로컬에서의 창업이 단지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생활과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문화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역의 고유성을 담보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이며, 창의적인 아이템을 실제 사업으로 묶어내는 역할은 기획자들이 맡게 된다는 점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들려주었습니다. 문화예술이 더해질 경우, 지역은 더 경쟁력 있고 풍요롭게 바뀔 수 있습니다. 강연은 담양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남겼습니다. “우리 지역의 고유한 힘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새롭게 연결할 것인가?” 로컬 기반 문화창업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삶과 기억, 사람을 엮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세 번째 강연은 강석훈 건축사사무소 선명 대표의 「담양 공간과 문화변천」이었습니다. 1954년도부터 2024년까지의 11개 연도의 담양읍 항공사진을 살펴보며, 담양의 공간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함께 확인했습니다. 영산강의 흐름과 강변 모래톱, 향교 앞 골목길과 시장, 추성경기장과 주변의 변화, 담양호로 이어지는 지형의 변화를 짚으며, 농경, 산업, 정보화·문화시대를 지나온 흔적 속에서 지금 담양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담양의 풍경에서 ‘느림’, ‘강·골목·시장으로 이어지는 실핏줄 같은 구조’, ‘당산나무와 넓은 들녘이 주는 풍요로움’을 담양 고유의 공간 DNA로 짚었습니다. 도시가 확장되고 정비되면서 어느 순간 비어버린 공간들, 주차장으로만 쓰이고 있는 옛 장소들을 보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어떤 추억을 기억하고, 어떤 공간을 이어갈 것인가?”
강석훈 대표는 담양이 걸어온 시간의 결을 살펴보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생각을 남겼습니다. 어느 한 곳에만 집중되지 않고, 단절되고 파편화된 공동체를 다시 잇는 공간을 만들며 자연을 존중하고 함께 사는 방식을 찾거나, 외지인과 지역 주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열린 공간 구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자연과 공간, 사람과 기억을 함께 고려하는 일. 앞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과제가 무엇인지 환기해 준 강연이었습니다.

네 번째 강연은 ㈜남도다락 서해숙 대표의 「담양의 음식문화, 기억이 쌓인 식탁」이었습니다.‘노포(오래된 가게)’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열었습니다. 오래된 가게에서 주인도, 손님도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공간. 그 안에서 맛은 어떻게 유지되고, 어떻게 변주되는지, 그 선택의 과정이 곧 지역의 문화이자 기록이라는 설명이 인상 깊었습니다.
노포는 주로 “음식의 맛” 위주로만 소개되어 이제는 주인, 공간, 손님, 시대의 변화까지 함께 기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담양에서 오래 사랑받은 음식점들은 단지 ‘맛집’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인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역다움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노포를 통해 담양을 설명할 수 있도록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노포가 가지고 있는 아날로그 정서와 고유의 맛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포는 한 지역의 일상이 쌓인 생활 기억의 장소이자, 맛과 삶의 방식이 이어지는 전승의 현장, 관계가 형성되는 공동체 구조, 그리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맛’이라는 감각으로 가장 선명하게 지역 정체성을 느끼게 하는 문화자원으로서의 의미를 갖습니다. 담양의 노포는 공동체의 기억이 보존되고 재생산되는 중요한 장소이며, 노포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은 그 기억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과정의 출발점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 대숲바람토크 - 대나무숲 속 이야기를 꺼내다.


질의응답 시간은 ‘대숲바람토크’는 대나무 숲에 마음의 이야기를 툭 던지듯, 참여자들이 편하게 질문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대숲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처럼 담양의 문화가 가진 ‘숨’과 서로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마주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Q1. 항공사진 속 특정 장소를 다시 군민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강석훈 대표는 “과거의 형태를 완전히 복원한다기보다,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물품을 교환하고, 작은 축제가 열릴 수 있는 광장의 기능이 회복되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Q2. 담양을 대표하는 소재인 대나무 축제에서 정작 대나무가 보이지 않습니다. 축제 속 대나무를 주제로 예술적 퍼포먼스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이선철 대표는 “평창에서도 락페스티벌, 음악제, 비엔날레 등 지역축제를 진행하고 있다”며, “대나무를 퍼포먼스, 디자인, 전시 등 다양한 예술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시도는 충분히 가능하고, 예술인들이 축제의 기획 단계와 경험 구성에 함께 참여한다면, 죽물시장과도 연결된 새로운 문화 형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Q3. 어르신 대상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 프로젝트를 해본 경험이 있나요?
황유진 대표는 “가능하지만 장기 프로젝트는 갈등과 조율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마을의 어르신들과 깊이 있는 작업을 더 이어가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Q4. 지역의 문화연구를 조사하며 만나는 사람에게 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있나요?
서해숙 대표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만나며, 때로는 경계심을 드러내는 어르신들을 오랜 시간 기다리고 마음을 얻어왔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질의응답에는 담양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이어가며,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기록해야 할지에 대한 실천적 질문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3. 두 번째 숨을 쉬며, 일상으로



포럼이 끝난 후 누군가의 질문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이어지고, 강연자의 답변을 다시 새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화려한 해결책이 아닌 담양이 앞으로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남기며, 어떤 방식으로 지역의 문화를 이어가야 할지 스스로 묻게 만드는 자리였습니다.
담양은 매력이 참 많은 도시입니다. 담양은 화려하거나 특별하진 않지만 또 다른 일상을 꿈꾸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일상의 가치는 숨을 쉴 때 공기를 세아리면서 마시지 않듯, 가치를 잊고 지나가기 쉽습니다. 매일 조금씩 바뀌어 눈치채지 못하는 거리의 변화, 이야기들이 모여 차려진 음식, 오래된 공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같은 일상들이 모여 담양의 특별한 문화이자 자산이 됩니다. 이번 포럼은 담양의 예술가와 활동가뿐만 아니라 담양을 사랑하는 모두가 모여 일상 속 문화를 주목하고 또 함께 만들어갈 다른 내일을 상상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내일 다시 이어가려는 마음, 지역의 숨결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두의 작은 관심들이 모일 때 비로소 담양의 문화는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2025 담양 문화예술포럼 「담양의 숨」도 그런 첫 걸음이었기를 바랍니다. 담양군문화재단이 앞으로도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가 모일 수 있는 열린 자리를 만들며 담양의 숨이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도록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어갈 모습을 기대합니다.

글. 박선주 sj-6470@damyangcf.or.kr
담양군문화재단 문화정책팀
사진. 담양군문화재단 제공

담양군문화재단 웹진 「담양 문화파인더」 | Vol. 04 | ​2025.12.10. 발행
© 2025 Damyang Cultural Foundation.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