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문화파인더
바람에 스민 담양, 사람에 스민 문화
담양은 나에게 평범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죽녹원의 푸른 대숲을 거닐면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온전히 자연과 내가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도시에서 잊고 있던 여유와 사색을 되찾게 해주었고, 여행이 그저 ‘관광’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담양의 풍광은 눈으로 보는 경치를 넘어, 그 속에 깃든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나에게는 여전히 깊은 기억의 토대가 되어 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
금성산성에 올랐을 때, 발아래 펼쳐진 담양의 전경은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성곽 너머로 보이는 들녘은 계절 따라 다채롭게 물들어 있었고, 멀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가느다란 선처럼 이어지며 그 풍경 속에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옛 성벽에 서서 바라본 담양은 한 지역의 풍경이 아니라, 수백 년의 역사와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과 이야기를 품은 삶의 터전이었다. 그 순간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담양의 긴 호흡 속에 잠시 동참하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이러한 시선은 이후 내가 담양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방식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죽녹원이나 소쇄원, 관방제림 등은 담양을 대표하는 명소지만, 그곳을 걸으며 내가 더 깊이 매혹되었던 것은 공간에 스며있는 인문적 자취였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와 학문이 머물렀던 정자 문화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지역민들의 공동체적 삶의 방식은 담양을 평범한 ‘자연 명승지’가 아니라 ‘문화적 풍토’를 지닌 깊은 맛이 나는 곳으로 만들어준다. 나의 담양 여행은 기념사진 몇 장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마주한 문화와 사람들의 모습이 내 안에 오래 남아, 이후 지역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진행한 담양 인문 소모임 멘토링 활동은 또 다른 의미를 더해주었다. 나는 지역민들과 함께 담양의 문화와 관광 현상,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인문문화 활동을 이해하고 나누는 과정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담양이 단순히 외부 관광객의 시선으로 소비되는 장소가 아니라, 지역민들이 스스로의 삶과 문화를 자부심 있게 가꾸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마을 단위에서 이어지는 전통 예술 활동,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적 삶, 그리고 젊은 세대와 어르신 세대가 함께 지역의 문화를 지켜가려는 노력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특히 노인들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지역사회의 역사적 기억을 전해주는 모습은 ‘살아 있는 아카이브’와 같았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부동마을의 김미란 이장 이야기다. 그녀는 도시에서의 바쁜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노모와 함께 살며,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하는 든든한 일꾼으로 자리했다. 김 이장의 마을 사랑은 끝이 없다. 마을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때로는 누구보다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바로 그녀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낡은 시설을 고치고, 버려진 공간을 되살리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새로운 일들을 하나둘 성사시켰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일들이 많지만, 그녀는 오늘도 여전히 마을 곳곳을 누비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열정에 마음이 저절로 움직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을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이 절로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수많은 이야기와 자료들을 그녀에게 아낌없이 건넸다. 요즘 그녀는 마을 어르신들의 옛이야기와 사라져가는 부동의 옛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그 이야기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내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이다. 다소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김미란 씨의 집념이라면 그 이상의 일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그녀의 손끝에서 태어날 그 아름다운 기록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질 날을, 우리는 조용히 기다려본다.

[중장년 인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한 ‘인생찬란 프로젝트’에 담양군 부동마을주민자치회에서 ‘마을역사찾기’를 주제로 참여했다.
해당 프로그램의 멘토인 소빈 작가는 사업의 방향성에 따라 부동마을의 아카이빙을 위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 예술의 아름다움과 함께 발견한 또 하나의 특성은, 담양의 문화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충분히 외부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은 대체로 잘 알려진 몇몇 명소에 집중하고, 그 이외의 다층적인 문화 활동이나 인문적 자원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지역민들 또한 외부와의 소통보다는 내부 공동체 안에서의 교류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결과적으로 지역문화의 확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담양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지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화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지역문화를 어떻게 더 다양하게 나누고 확산할 수 있을까?
첫째로 필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담양의 문화와 관광 현상은 단순한 공간 소개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예컨대 죽녹원의 대숲을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로 설명하기보다, 오랜 세월 동안 지역민들이 대나무를 생활자원으로 활용해온 방식,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 문화를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함께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야기가 더해질 때,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로 다가온다.
둘째, 지역민의 주체적인 참여가 강조되어야 한다. 외부 전문가가 지역문화를 해석하고 소개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오히려 지역민 스스로가 자신들의 문화를 기록하고 발신할 때 지속성이 생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적 지원과 플랫폼의 마련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지역민들이 구술사 작업에 참여하거나, 젊은 세대가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여 지역의 문화를 기록·발신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담양문화는 훨씬 풍성하고 다층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셋째, 문화의 확산은 단순히 ‘관광객 증가’를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지역민의 삶의 질과 맞닿아야 한다. 지역의 문화적 자원이 외부에 소비되기만 한다면, 오히려 지역의 피로를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관광과 문화 확산이 조화를 이루도록 정책적 균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소쇄원과 같은 공간은 대규모 관광객의 유입보다,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의 장으로 보존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반대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처럼 대중성이 큰 장소는 관광객과 지역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또한 담양의 문화는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더욱 빛날 수 있다. 죽향문화체험이나 전통음식 체험과 같은 프로그램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면, 외부인들에게는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 되고, 지역민들에게는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길이 될 것이다. 전통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그것을 현대적으로 ‘변용’해내는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내가 담양에서 경험하고 멘토링 과정에서 느낀 가장 큰 소회는 ‘지역의 문화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단단히 서야 한다’는 점이었다. 담양의 문화적 자원은 이미 충분히 풍부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공유하고,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결국 문화 확산의 핵심은 단순한 홍보나 마케팅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자기 문화를 사랑하고 그것을 외부와 나누려는 자발성에서 비롯된다.
담양에서의 여행과 경험은 내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지역의 문화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이제 그 답이 ‘외부 관광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민 스스로를 위한 것이자, 동시에 외부와 나누는 삶의 자산’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담양이 가진 풍경과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매혹적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그것을 ‘살아 있는 문화’로서 이어가기 위한 세심한 보완과 참여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지역문화 확산의 길이 경제적 효과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