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문화파인더
 
고슬고슬한 광목천에 아들에게 전하고픈 엄마의 이야기가 쓰여있다. 자세히 보니 색색이 실로 꿰어진 글자였다. IT 시대에 종이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것처럼 하나하나 수 놓인 문자에서 아들에 대한 정성과 관심이 배어 나온다. 담양 무월마을에서 삶을 예술로 만드는 정연두 작가의 가을볕 같은 사랑이다.
 
아들은 고등학생이었다.맘에 드는 운동화를 사기 위해 용돈을 모아 눈 시원한 파란 색깔의 운동화를 샀다.학교 운동장에서 좋아하는 축구를 열심히 하다 보니 운동화가 해졌다.엄마에게 꿰매달라 부탁한다.고민하다 꽃수를 놓고 아들이 걸음걸음 다닐 길을 표현했다.운동화를 본 아들이 묻는다.“왜 꽃수를 놓으셨어요?”“니가 걷는 길이 꽃길이었으면 해서..”아들은 꽃수 놓아진 파란색 운동화를 신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갔다.어느 날 군사우편을 받았다.발에 맞는 군화를 받기 전이라 운동화를 신고 생활하는데 꽃수의 꽃잎이 떨어졌나 보다.“엄마의 꽃잎이 떨어져 가는 것이 너무 서글퍼요.”라고 적혀있었다.“현준아, 꽃잎이 진자리에 열매가 맺히는 거야.”답장을 보냈다.정연두 | 엄마의 꽃잎 (2024. 5.)
 
달빛무월마을(담양군 대덕면)에 들어서서 가지런히 정리된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양쪽으로 놓인 집이 작가의 집이란 걸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대문부터 마당까지 눈길 가는 곳마다 예술가의 손길이 닿아있다. 송일근, 정연두 작가의 집이면서 작업공간이다.
 더운 여름, 어르신들은 남의 집 가는 건 아니라고 했건만, 실례인 줄 알면서도 들어가 자리에 앉자, 갖가지 음식을 준비해 내어 준다. 집안의 구조와 실내 장식도 흔히 그려 지는 집들과 같지 않다. 두 작가의 취향과 생활하는 방식에 따라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단다. 그게 10년이나 걸릴 줄 누가 알았겠느냐만. 그 시간은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세월이었고, 아이들이 자라나는 만큼 자연에 사람이 발을 맞춰야 한다는 진리도 깨닫는 과정이었다.
 
 
송 작가는 7대째 송씨 집안의 터를 지키고 있는 막내아들이라 했다. 그렇다 보니 정작가는 백년해로하기로 한 부부의 연으로 본인의 의지완 상관없이 농촌 마을에 닻을 내렸다. 벌써 30년째다. 이제 더는 이주민이 아닌 온전히 무월의 사람이다. 어떤 기점은 없다. 그저 살다 보니 마을의 문화와 삶에 어느덧 스며든 것이다.
 지구별을 상상하던 엉뚱하고 감성 충만한 소녀였던 정 작가는 광주에서 나고 자란 터라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농촌 생활은 많은 것이 불편했다. 집성촌이었던 마을에 들어온 새색시에 쏟아지는 많은 관심부터 8남매의 막내아들이었기에 몇 살 차이 나지 않은 사람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것, 심지어 집 안팎으로 놓인 많은 금속장비(각종 농기구)마저도 불편했다. 어릴 적부터 차가운 속성이 싫어 귀걸이조차 걸치지 않았던 사람 이었다. 차갑고 딱딱한 것보다는 따뜻하고 유연한 것이 좋았다. 햇살 좋은 날 마당에 널어놓은 이불빨래에서 나는 칼칼한 삶은 내음처럼.
 
처음엔 불편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피하려 했다. 그런데 도무지 피해지지 않아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친해지자고 생각했던 게 첫걸음이었다. 그때부터 장신구를 하나씩 착용해보기로 했단다. 귀와 목에 걸린 작고 얇은 장신구를 만지작거리며 보여준다. 생전 처음 해보는 거라고 했다. 낯선 곳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편해지더란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 무월마을에도 귀농에 대한 로망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농촌의 일상에 낯설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가까워지기도 하고, 다시 떠남에 아쉽기도 했던 긴 과정에서 이젠, 그렇게 오가는 사람들과 애써 친해지려 하지도, 멀리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름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자신이 가진 색으로, 성향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란 말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요즘 지역마다 ‘로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단순한 지역성을 넘어 각자의 고유성과 다채로움을 의미하는 말이다. 산골짜기의 조용한 마을, 예술인이 모인 도시 변두리 모두 로컬이라 하지만, 그 모든 로컬은 다르다. 마을을 이루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이곳에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간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전남은 인구소멸위험지수 0.329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며 1위에 올라 있다. 도내 22개 시군 중 20개가 이미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고, 그 흐름은 점점 더 빨라지는 중이다. 2016년 7월, 전남의 소멸위험지수는 0.5에 도달했다. 이제는 90%가 넘는 시군이 임계선 아래에 있다. (※ 0.5미만부터 소멸위험지역으로 본다.) 숫자로 드러난 현실 앞에서, 필자는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과 함께 괜히 조급한 마음이 인다.
 담양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담양이 평균적인 ‘인구’ 기준으로는 소멸위험에 놓여 있지만, ‘생활인구’라는 다른 지표에서는 오히려 활기를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 한양대학교에서 개발한 ‘지역 자산 역량지수’는 단순히 인구수만으로 지역을 판단하는 기존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각 지자체가 보유한 자산을 함께 고려해 입체적인 지역 진단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 지표에 따르면, 담양은 생태와 관광을 중심으로 한 지역 자산이 두드러지는 ‘안정생활형’ 지자체로 분류된다. 실제로 담양은 전남 내 인구소멸 위험지역 가운데 생활인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담양에 ‘머물러 가는 사람’이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생활인구는 지역경제와 문화관광의 지속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정 작가가 마을에, 송씨 집안에 스며들 수 있었던 힘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걸 알아 차리는 데 십수 년이 걸렸다. 바느질하고, 요리하고, 집 짓고, 아이를 키우고, 작업하는 모든 것이 삶에, 새로운 터전에 순응하는 과정이었고, 꽃자리였다. 앉고 서고 놀고 입고 아팠던 모든 행위 또한 나였다. 어느 곳에 자리하든, 나로 살아가는 행복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 다다른 곳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곳 또한 누군가의 삶의 연속이며, 일하고 먹고 자고 살아가는 일상이다. 변화와 새로움에 대한 열망과 희망은 내 안에 존재할 뿐, 누군가 쥐여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는다.
 귀농·귀촌, 이주를 통해 담양에 새롭게 자리 잡으려는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일자리와 창업지원, 주거 그리고 출산·양육을 둘러싼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수적일 것이다. 지역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다시 지역을 살리는 순환을 가능하게 할 테니.
 하지만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이라는 문제에 대한 우려와 해결방안을 논하는 말들은 살짝 뒤로하고, 작은 농촌 마을에 살며 삶을 사랑하는 작가의 이야기로 실낱같은 실마리를 연결해본다.
사람이든 공간이든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새로운 터전을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는 것.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
흔히 쓰는 ‘적응’이란 단어에는 환경에 나를 맞추고자 애써 노력하는 모양새가 느껴진다. 반면에 ‘스며듦’은 자연스럽게 들어가 섞이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누구든 적응보다는 스며듦으로 머물렀으면 싶다. 필자 또한 지난 5월, 담양군문화재단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거주지도 함께 전라남도로 옮겨왔다. 주변에서 그리고 스스로 입버릇처럼 잘 적응하고 있냐고 묻지만 나 역시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남도의 로컬문화에. 
담양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의 조직문화와 생활양식에.
그러다 그렇게 언젠가는 담양사람으로 불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