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문화파인더
* 본 게시물은 PC 환경에 최적화되어 PC화면으로 읽기를 권장합니다.

말이 담양이지,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을 달린 담양의 끝자락.
그러다 만난 눈 앞의 호수, 바로 담양호다.
그 옆으로 ‘담양호 어탕국수’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흔하지 않은 메뉴라 호기심이 들어, 앉자마자 어탕국수를 주문한다.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다가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는데 식탁 위엔 다들 매운탕 그릇들 뿐이다. ‘아뿔싸, 이 집의 진짜 메뉴는 저건가 보구나.’
”원래 저희 집 주메뉴는 매운탕이에요. 그런데 아무래도 단가가 높다 보니, 손님들이 부담 없이 가볍게 드실 수 있도록 10년 전부터 내놓은 게 이 어탕국수예요.”
이강열 사장의 말이다.
어쨌든 먼저 맛본 어탕국수는 그동안 먹어봤던 어탕국수와는 사뭇 달랐다.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매콤하면서도 약간은 심심한 듯 그리고 된장 향이 약하게 느껴졌다.
남도에서는 매운탕이나 생선찜, 심지어 물회에도 된장을 넣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된장 맛을 숨기거나 안 쓰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집은 구수한 된장 향이 확 올라왔다. 첫 숟가락에 “바로 이 맛이야!” 하고 감탄이 터져 나오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지막까지 숟가락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끌림이 있었다.
하지만 이 집의 진가는 주인장이 자신 있게 권하는 민물 잡어탕을 먹는 순간 증명되었다. 왜 이곳이 아는 사람들만 찾는다는 노포 맛집인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민물새우 튀김 등 몇 가지 메뉴를 더 시켜 먹으면서 이제 나 역시 이 집의 단골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고소한 새우가 푸짐하게 튀겨 나온 상 앞에서 먹는 내내 고민에 빠졌다.
“이걸 포장해 갈까? 말까?”
사실 당장 함께 먹을 사람이 없었는데도 그저 누군가와 그 맛을 나누고 싶었다.
그럼 매운탕 맛은 어떨까?
입안 가득 감도는 깊고 구수한 국물, 비린내 하나 없이 착 감기는 감칠맛.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이 아니면 내기 힘든 맛이다.
메기를 기본으로 빠가사리나 피라미, 민물새우 등이 구수하고 시원하게 어우러져 자꾸만 숟가락질을 하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실가리까지 더해져 한 그릇만으로도 여름 보양이 뚝딱이었다.
어탕국수도 맛있지만, 잡어탕과 민물새우튀김은 정말 맛있어서 누구든 권하고 싶은 맛이다.
이 집의 오랜 단골이라는 어느 노부부는 “이 집 20년 단골인데요. 이렇게 진한 국물은 다른 곳에선 못 먹어요.” 대체나, 냉장고에 넣어 둔 매운탕 국물이 단단한 묵 한 덩어리로 엉겨 있는 모습을 보니, 그 안에 녹아든 생선 진국의 깊이가 절로 느껴졌다.
그럼 이 진한 국물의 첫 번째 비밀은 무엇일까? 바로 식당 주인이자 담양호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허가 어부, 이강열 사장의 그물망 안에 있다.
1995년, 이 사장이 담양호에서 어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지자체 허가를 받은 어부가 4명쯤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하나둘 떠나갔고, 30년이 지난 지금 담양호에 남아 물길을 가르는 이는 이강열 사장 단 한 사람뿐이다.
처음에는 아내의 권유로 가막골 근처 ‘초원의 집’이란 이름의 식당을 열었다.
물론 메뉴는 갓 잡은 생선으로 만든 지금 같은 매운탕류였다.
20년이 지나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며 ‘담양호 어탕국수’로 간판을 바꿨지만, 오래된 단골들은 여전히 옛 이름인 ‘초원의 집’으로 기억하곤 한다.
그가 담양호에서 낚아 올리는 어종은 메기, 붕어, 잉어, 장어, 빠가사리(동자개), 쏘가리, 피라미, 민물새우 등 무려 15종에 달한다. 보통은 하루 20kg 남짓 수확하지만, 비가 오고 가막골 골짜기에서 새 물이 밀려드는 날이면 산란하러 나오는 고기들로 많아 하루 100kg까지 넉넉하게 낚아 올린다.
주로 투망을 던지는 그에게 물속 지형을 파악하고 고기들의 길목을 읽어내는 일은 30년 세월이 스며든 직관의 영역이다.
”땅에서 하는 일도 힘들겠지만, 속을 모르는 물일은 몇 배는 더 어렵고 무서워요. 물속 사정을 파악하고 고기가 있는 곳을 알아내기까지 저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잡아 올린 싱싱한 민물고기들은 그대로 주방으로 옮겨져 손님들의 식탁에 오른다.
어탕국수와 잡어탕을 처음 맛본 손님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국물이 이렇게 구수하고 진하고 걸쭉하냐?”고 묻는다. 주방을 책임지는 이강열 사장의 아내, 조정숙 씨의 대답이다.
”특별한 거 없어요. 그냥 맹물에 다대기 양념 풀면 끝이에요.”
양념은 재래식 된장과 국간장, 고춧가루, 맛술, 매실엑기스, 마늘, 생강, 그리고 말린 고추를 갈아 넣는다. 메기찜에는 자연스러운 단맛을 내기 위해 양파와 당근을 갈아 넣는 것이 전부다.
생선의 흙내와 비린내를 잡으려고 온갖 재료를 쏟아붓는 보통의 민물 집들과 달리, 맹물만으로 끓여내도 비린내 없이 깊은 감칠맛이 나는 이유는 바로 생선의 ‘신선도’ 덕분이다.
”민물고기에서 흙냄새가 나는 건 오염된 물을 먹었기 때문이에요. 담양호는 그런 게 일절 없어요.”
이 사장의 자부심 가득한 말이다.
사실 담양호는 영산강의 최상류 발원지인 가막골 청정 계곡의 물이 그대로 흘러드는 데다, 주변에 오염원인 상업 시설이나 공장이 없어 물이 맑고 차갑기로 이름난 곳이다. 여기에 수질 보호 구역으로 철저히 관리되는 자연환경 덕분에 흙냄새 없는 깨끗하고 건강한 생선이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청정 조건 속의 유일한 어부인 그는, 매일 그물을 던지지 않는다.
식당에서 팔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잡자는 게 그의 철칙이다.
욕심내지 않고 자연이 내어준 만큼만 거두어야 호수도, 삶도 오래도록 맑게 흐른다는 것을 30년 세월 속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식탁에 오르는 밑반찬 역시 속임수가 없다. 제철마다 직접 밭에 씨를 뿌려 정성껏 키워낸 채소들로 상을 채운다. 투박하지만 남도의 정성이 담긴 반찬은 진한 국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오늘도 이강열 사장은 새벽녘 담양호의 물안개를 헤치며 배를 띄운다.
아내와 함께 정성껏 끓여내는 어탕국수 한 그릇에는 30년 동안 물과 함께 살아온 어부의 고집과, 진득한 남도의 맛이 고스란히 얹혀 있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혹 담양을 방문하신다면 구수하고 진한 국물 속에 담긴 어부의 30년 인생을 한 숟가락 깊게 담아 가시기를 권한다.
글. 박지현 parkjazz@naver.com
사진. (재)담양군문화재단, 박지현
담양군문화재단 웹진 「담양 문화파인더」 | Vol. 18 | 2026. 9. 16. 발행
© 2026 Damyang Cultural Foundation.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