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문화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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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농부. 그들은 어떻게 농부의 삶을 선택했을까.
‘농부’라는 단어에 연상되는 이미지는 의례 밀짚모자 아래 까맣게 그을린 얼굴,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지만 그럼에도 수확의 기쁨으로 살짝 미소지으며 먼 산을 바라보는 어떤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청년 농부’는 왠지 힙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시대 ‘청년’이라 함은 육체노동보다는 출퇴근시간을 오가며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워라밸을 추구하는 노동자이길 바라지 않았던가. 시대는 빠르게 흐르고 변한다. 청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고, 각자의 개성으로 시대적 편견과 무드를 바꿔나간다. 청년 농부 또한 젊음과 아이디어, 스마트한 기술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상품을 개발하며 지원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SNS 홍보는 기본이다. 그러니 어찌 주목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2년 전, 담양대나무축제에서 그들을 처음 마주했다. 축제현장에서 유난히 생기 넘치는 부스 하나. 제한시간 내 포도박스 접기, 콩 무게 맞히기 게임을 참여하면 작은 상품을 주는 이벤트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들은 농사를 짓는 청년들이었고, 청춘의 발랄함과 로컬푸드의 케미스트리는 꽤나 신선했다. 그날, 청춘부록은 내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다.
담양 문화파인더에 담양의 역사와 생활문화 자원뿐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흐름,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오래된 장소와 기억의 가치만큼, 지금 담양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중요한 문화의 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죽녹원 앞 영산강 문화공원에서 청춘부록이 운영한다는 「청춘그린마켓」 포스터를 발견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기분이 이런 것일까.
오, 청춘부록 섭외하자! 출동!

날 좋은 4월의 그곳엔 청년 농부들의 물건으로 만든 힙한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고 작은 스티커 굿즈가 놓여 있었다. 멤버들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각자의 자리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2년 전 느꼈던 생기와 설렘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단순히 장터라기엔 청년 농부들의 취향을 펼쳐놓은 작은 페스티벌에 가까웠다.
‘일하면서 이렇게 설렌 적이 있었나!?’ 마치 보물 하나 찾은 마냥 신나게 인터뷰를 제안했고, 몇 차례의 연락과 미팅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면 좋을지 방향을 맞혀갔다. 이쯤 되면 취재보다 발견에 가까웠다. 우리가 찾던 담양의 청춘들이 바로 여기에 모여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6월 17일, 청춘부록 여덟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매주 수요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이슈를 공유하고 의논하며 ‘함께’의 시너지를 키워가고 있었다.
“한 분씩 소개해주시겠어요?”
누군가는 자신을 팀장이라 했고, 누군가는 홍보담당, 총무, 서기, 대외협력, 유망주라고 말했다. 공식적인 직책과 장난스러운 직책의 경계가 흐릿했지만, 다들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청춘부록은 담양군 청년 4H¹⁾에서 동아리로 시작한 청년 농부 공동체다. 처음부터 뚜렷한 모양을 갖춘 모임은 아니었다. 서로 이름도, 나이도 잘 모르던 청년 농부들이 ‘마케팅도 해보고 싶고, 유통도 해보고 싶은데 같이 할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나둘 모였다. 농사는 짓고 있는데 함께 궁리할 사람이 없었다. 혼자 끙끙대느니 일단 만나보자. 청춘부록은 그런 조금은 단순하고, 그래서 더 솔직한 마음에서 시작됐다.
어떤 이는 외지에서 담양으로 와 귀농과 영농²⁾에 적응하고, 어떤 이는 담양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농사를 이어받았다. 또 어떤 이는 농작물로 가공식품을 만들고, 어떤 이는 오랫동안 쌓은 지역 농업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청춘부록의 바깥을 연결하고 있다. 각자 자신만의 색깔과 속도로 청춘부록에 함께하고 있다.
이날 자리에는 베리브라더스 권노훈, 프룻퍼리 정진주, 스트로벨희 김창희, 잇베리 정세진과 김민수, 시목원 김지은, ㈜누리보듬 송하 이지연, 그리고 직장생활과 농업을 병행하고 있는 정건용까지, 8명의 청춘부록이 함께했다. 이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제각각이라서 청춘부록다웠다. 혼자서는 어려웠던 일을 함께 해보는 것, 모르는 것을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 내 농작물이 나오지 않는 계절에도 누군가의 상품을 함께 팔아주는 일. 청춘부록은 그렇게 각자의 농사와 동시에 인생의 부록을 함께 쓰고 있었다. 각자 본편 같은 농사를 짓다가 수요일이면 모여 함께 부록을 쓴다. 이름 한번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1) 4H: 농촌 청소년을 대상으로 농심 함양과 자연환경 친화적 활동 및 기술 연마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사회교육단체. 현재는 실질적으로 농촌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청장년까지 대상을 확장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중앙본부를 중심으로 16개 시도 사무처를 운영하고 있다. 4H는 머리(Head), 마음(Heart), 손(Hands), 건강(Health)을 의미하며, 이를 지(智), 덕(德), 노(勞), 체(體)로 번역하여 실천 중심의 농업 교육을 진행한다. (출처: 한국4H중앙본부 누리집)
2) 귀농과 영농: 귀농은 농업을 주업으로 삼는 생활 방식의 변화를, 영농은 농업을 경영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농사를 짓는 일은 실제로 수많은 일손과 변수에 대응하는 판단 그리고 선택이 필요한 일이다. 어떤 작물을 선택할지, 어떤 약을 써야 할지, 병충해와 자연재해에 어떻게 대응할지, 언제 수확하고 어떻게 팔지, 농산물을 어떻게 알릴지까지. 정진주(프룻퍼리 농장주)에게 청춘부록이 필요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부모님이 계신 담양으로 내려와 농사를 시작하려고 보니, 귀농과 영농생활을 함께 할 사람들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4H에 가입해서 이들을 만났고, 각자의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청년들이 모여서 청춘부록을 만들게 된거에요.”
지금의 청춘부록은 서로의 다름이 시너지가 되었다. 다르니까 역할이 생겼고, 모르는 것이 달라서 서로 물어볼 것도 많아졌다. 잘 맞아서 함께한 것이 아니라 함께하면서 조금씩 맞아간 셈이다. “한번씩 베테랑 선배한테 작농에 대한 노하우를 얻기도 하는데, 일 끝나고 새벽 1시에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도 될 만큼 의지하는 사이가 돼버렸어요.” 새벽 1시의 전화도 받아주는 농부 동료라니, 웬만한 고객센터보다 든든하다. 청춘부록은 가족과 친구 사이 어디쯤에서 어떠한 이해 관계없이 기꺼이 돕고, 응원하고 애정하는 사이로 함께하고 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우리 농장과 농산물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였다. 1차 농산물로만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자의 농장 브랜드와 청춘부록의 활동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다. SNS를 열어 릴스를 찍고, 오픈마켓에 나가 소비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부끄럽고 어색했던 콘텐츠 촬영도 반응이 생기자 조금씩 재미가 붙었다. 밭에서는 농부였지만 카메라가 켜지면 기획자도, 모델도 되고, 때로는 몸을 사리지 않는 인플루언서가 되기도 한다. 각자의 역할은 함께 움직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청춘부록의 활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장터다. 청춘그린마켓, 플리마켓, 여수와 무안 등 타지역 행사 참여까지. 이들은 농산물을 팔기 위해 장터에 나갔지만, 장터에서 얻은 것은 매출만이 아니었다.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직접 설명하고, 다른 지역의 청년농부를 만나고, 청춘부록이라는 이름을 조금씩 알리는 시간이었다.
물론 모든 일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타겟이 맞지 않아 기대만큼 성과가 나지 않은 행사도 있었고, 준비할 때마다 놓친 것만 같은 불안도 있었다. ”매번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다음엔 이렇게 하면 되겠다.’ 그게 안돼요.” 라며 노하우가 쌓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런 시행착오 속에서도 변화는 생겼다.
“바뀐 거 있어요. 회의 시간이 짧아졌어요.”
웃음이 터졌다. 회의가 짧아졌다는 말에 이렇게 환호할 일인가 싶지만, 직장인이라면 안다. 이것은 엄청난 성과다.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손발이 맞아간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였다.
공동 작물도 청춘부록다운 활동 중 하나다. “같은 걸 한번 같이 키워보자” 는 마음으로 콩과 옥수수를 재배했다. 수확한 작물은 프리마켓에서 팔거나 지역 주민들에게 나누며 청춘부록의 이름을 알렸다. 수익은 팀 회비가 되기도 했고, 함께 일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단합의 경험이 되었다. 농사일은 쉽게 부탁하기 어려운 힘든 일이지만, 친분이 쌓인 관계 안에서는 서로의 일손을 돕는 일도 가능해졌다. 물론 “무료로 도와주는 건 아니다.” 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 농담 안에는 현실감과 친밀함이 함께 들어 있었다.
청춘부록의 색깔은 장터 밖에서도 드러난다. 릴스, 티셔츠, 굿즈, 신제품 아이디어까지. 대화 중 잡초 이야기가 나오자, 농업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티셔츠 문구와 굿즈 이야기가 이어졌다. “청춘부록 굿즈가 없는 거예요. 그런 것도 해보고 싶은데…” 라는 말에는 단순히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보다, 농업을 조금 더 재미있고 젊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딸기에 바질을 더하고, 토마토를 차가운 디저트로 만들고, 잡초마저 문구로 살려낸다. 청년 농부들이 모이면 농업도 자꾸 딴 길로 샌다(P). 물론 좋은 쪽으로. 도전적인 감각과 트렌디한 시도, 여기에 “같이 해보자!” 는 에너지가 더해지며 청춘부록의 농업은 더 젊고, 더 이색적인 장면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청춘부록이 바라보는 담양은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담양에는 숨어 있는 사람과 자원, 아직 발굴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많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가능성만큼 아쉬움도 분명했다. 개인 농업인에 대한 지원은 있어도, 청년 공동체가 함께 활동하기 위한 기반은 부족하다고 느꼈다.
”청년들의 활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 질문에 가장 먼저 말한 것은 창고와 냉장고였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 행사 물품을 둘 수 있는 창고, 행사현장에 꼭 필요한 냉장고, 늦은 시간 회의할 수 있는 장소. 역시 거창한 지원이 필요치 않았다.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의 필요는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상상으로 이어졌다. 청년마을, 팝업, 카페, 굿즈, 체험, 농장과 민박을 연결한 농촌 프로그램까지. 누군가는 “담양군에서 어느 마을 하나를 주면 우리가 거기서 같이 살면서 밥도 먹는 마을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청춘부록이 언젠가 담양 안에서 청년들이 함께 머물고 일하고 만나는 작은 생활권을 만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서로 다른 농장과 작물, 가공식품과 체험, SNS와 장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마을 하나가 생긴다면 농산물도 팔고, 밥도 해 먹고, 카페도 열고, 손님에게 농장 구경도 시켜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조금 시끄럽고 꽤 재미있는 마을이다.
청춘부록이 지속할 수 있는 이유를 묻자,
“공감”, “욕심내지 않는 것”, “의견을 존중하는 것”
이라 했다. 내 작물이 나오지 않는 시기에도 누군가의 작물을 같이 팔고, 모든 구성원의 의견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질문하고 답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는 관계. 그 관계가 청춘부록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다.
“청춘부록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마지막으로 조금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잠시 고민하던 이들은 ‘안식처’, ‘제2의 고향’이란 단어를 꺼냈다. 지역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일은 혼자만으로는 어렵다. 청춘부록은 그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는 청년 농부들의 모임이다. 여전히 무엇을 하게 될지는 정확히 모른다. 굿즈를 만들 수도 있고,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수도 있고, 정말 어느 마을에 모여 살게 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이거 해볼까?”라고 말했을 때, 옆에서 “콜!”을 외쳐줄 사람이 일곱 명이나 있다는 것이다. 함께라서 가능한 일들, 그리고 함께라서 앞으로도 가능해질 일들. 청춘부록의 이야기는 지금 담양이라는 밭 위에서 천천히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여덟 명의 멤버, 하나의 청춘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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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화정책팀 damyangcf@naver.com
사진. 담양군문화재단, 유토픽쳐스, 청춘부록
담양군문화재단 웹진 「담양 문화파인더」 | Vol. 014 | 2026. 7. 22.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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