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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 이야기 ①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그 비움의 미학
  • 죽순 이야기 ①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그 비움의 미학

    담양 문화파인더

문화토리 대표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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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비가 내리고 나더니 마당이며 텃밭 곳곳에서 미친 듯이 죽순이 돋는다. “분죽이라 맛있재” 지나는 뒷집 할머니다.
우리 마을에 나는 대나무 종류가 분죽이고, 분죽 죽순이 맛이 최고라는 말이다. 대나무에 분가루가 덮인 것 같다하여 분죽이라고 한다는데 몇 개 꺾어 솥에 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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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이틀 동안 비가 내리고 나더니 마당이며 텃밭 곳곳에서 미친 듯이 죽순이 돋는다.
”분죽이라 맛있재” 지나는 뒷집 할머니다.
우리 마을에 나는 대나무 종류가 분죽이고, 분죽 죽순이 맛이 최고라는 말이다.
대나무에 분가루가 덮인 것 같다하여 분죽이라고 한다는데 몇 개 꺾어 솥에 삶는다. 옥수수 삶는 냄새가 진동한다.
참 이상한 것은 생긴 것이 비슷해서인지 삶는 냄새도 똑같다는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죽순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냄새만 맡으면 얼른 쪄서 뜨끈한 채로 쪼개어 먹고 싶어진다.
‘담양산’ 아들은 3살 무렵부터 죽순을 먹기 시작하더니 이제 제법 죽순 식도락가가 되었고 나 역시 이젠 그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처음 이사 와서 대숲에 드는 바람에 마음이 스산해지고 무섭던 것이
이제 그 바람소리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으니, 사람은 환경의 동물인 모양이다.


대나무박물관의 대나무길, 대나무 줄기 위로 은은하게 분가루가 내려앉은 듯한 숲의 풍경.
분죽이라 불리는 솜대는 담양 사람들의 생활 가까이에서 자라며, 죽순과 그늘, 바람의 소리까지 내어주는 다정한 존재다.


 
 담양으로 이사 온 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시간 동안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눈을 뜨면 늘 대나무가 서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앞마당에도 뒷마당에도, 집 옆으로도 온통 대나무 천지였으니까.
 ’바람이 분다’는 걸 대나무 잎사귀가 흔들리는 덕분에 알게 되었고, 하얗게 눈이 내린 날엔 나무도 잠시 드러누워 쉰다는 걸 대나무를 보며 배웠다. 언젠가 나의 게으름을 보시고 “그렇게 잠만 자다간 허리 뿌라진다”며 외할머니의 말씀이 사실이란 걸 보여준 것도 대나무였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껏 휘어졌던 대나무가 결국 꺾어지고 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고기가 없는 식사는 할 수 있지만 대나무 없는 생활은 할 수 없으며, 고기를 안 먹으면 몸이 수척해지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저속해진다’고 했다던가. 그 말처럼 대나무 하나가 내 삶의 참 많은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사실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식물학적으로는 여러해살이풀로 구분되어 있다. 나무와 풀을 나누는 기준은 ‘나이테가 있느냐 없느냐’다. 좀 더 과학적으로 들여다보면, 나무는 체관과 물관 사이에 있는 형성층이 끊임없이 세포 분열을 하면서 부피를 키우고 그 흔적으로 나이테를 남긴다. 반면 풀은 줄기의 관다발에 있는 형성층이 딱 1년밖에 기능을 하지 못해 나무처럼 굵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는 몇십 년 동안 계속 자라는 연속성을 가지지만, 풀은 다년초라 해도 1년 단위로 돋았다가 스러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 대나무는 스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푸르게 서 있으니 사람들이 나무로 착각하기 쉽지만, 처음 땅속에서 자라 올라올 때의 그 굵기 그대로 평생을 살아가기에 나무로서의 조건을 다 갖추지 못한 셈이다. 그 절묘한 상식을 고산 윤선도 선생은 《오우가》에서 시 한 구절로 멋지게 펼쳐놓았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철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대나무의 1시간 동안 생장 속도는 소나무의 30년 길이생장과 같다고 한다.
 그 원리는 이렇다. 소나무는 줄기 끝에만 생장점이 있는 소나무와 달리 대나무는 마디마다 생장점이 있어 매우 빠르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식물은 생장촉진제인 지베렐린과 옥신이 함께 분비되어 길이 생장을 촉진하게 되는데 빠른 생장 속도로 인해 줄기의 벽을 이루는 조직은 급속히 늘어나지만 속을 이루는 조직은 세포 분열이 느리기 때문에 대나무의 속이 텅 비게 되는 것이다. (참조: 과학 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과학질문사전/북멘토/의정부과학교사모임)
 게다가 나무처럼 형성층이 없어 초여름 성장이 끝나고 나면 몇 년이 되어도 비대생장이나 수고생장은 하지 않고 부지런히 땅속줄기에 양분을 모두 보내 다음 세대 양성에 힘쓰는 것이 보통 나무와 대나무가 다른 점이다.


느리게 나이테를 새기는 소나무와, 마디마다 힘을 받아 순식간에 자라나는 대나무.
대나무는 비어 있음으로 곧게 서고, 땅속줄기로 다음 생명을 준비한다. (사진출처 : Pixabay)



아래 글은 두산백과에 실린 대나무에 관한 보고서다.

 대나무는 벼목, 대나무아과(Bambusoideae)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120속 1,250종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19종이 분포하며 대부분의 대나무 품종은 중국과 일본에 분포하는데 중국에 약 500여 종, 일본에 약 650여 종이 자생한다.
 죽순대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높이는 약 10m 내외이며 어린 죽순을 식용으로 먹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맹종죽(孟宗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솜대는 높이 약 10m 내외로 자라는 대나무이며 어린순이 올라올 때 표피에 붙은 흰털이 솜처럼 보인다고 해서 솜대라고 부른다.
 오죽(烏竹)은 표피가 검은색이라고 해서 한자 ‘까마귀 오(烏)’자를 써서 오죽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서 많이 자라며 특히 강릉에서 자라는 오죽이 유명하다. 오죽은 처음에는 녹색으로 자라다가 점차 성장하면서 검은색으로 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조릿대가 있는데 높이는 약 1~2m 이내로 자라며 우리나라 남부지방 높은 산에서 많이 자라며 한약재로 이용한다. 그리고 조릿대와 비슷하게 높이 1~2m 내외로 자라는 갓대가 있다.
 갓대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일부 고산지대에서만 자란다. 이대는 높이 약 3~4m로 자라는 대나무이며, 비슷한 종류로 신이대가 있다.
 해장죽(海藏竹)은 주로 바닷가에서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높이는 4~5m 정도로 자란다. 방풍을 겸한 주택가 담장으로 많이 심었으며 어린 죽순을 식용한다. 구갑죽(龜甲竹)은 대나무의 표피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거북등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구갑죽이라고 부른다. 구갑죽은 중국이 원산이며 높이 10~30m까지 자란다.




 여기서 솜대가 내가 늘 자랑하는 분죽이다. 분죽뿐 아니라 맹종죽, 왕대 등 모두 어린 죽순을 먹을 수 있다.
 아래는 맹종죽의 이름이 지어진 것에 관한 설화다.

 중국 고금의 효행자 24인을 수록한 〈이십사효(二十四孝)〉에는 맹종이라고 하는 사람이 들어 있다. 맹종은 삼국시대 강하(江夏)사람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그의 모친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대나무 순을 먹고 싶다고 하므로 그는 눈이 가득히 쌓인 대밭으로 갔지만 추운 겨울에 대나무 순이 있을 턱이 없었다. 어머니에게 효행을 할 수가 없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자 떨어진 눈물자국에서 계절도 아닌데 대나무 순이 돋았다. 맹종은 기뻐하며 이것을 따서 어머니에게 잡수시게 하였다고 한다.
(출처: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넥서스/ 이상희)

 ‘삼국유사’에는 신라 유리왕 때 이서국이 금성을 침입했는데, 신라군이 당해 내지 못하자, 이때 귀에 왕대 잎을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 신라군을 도와 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래서 미추왕의 능호를 죽현릉(竹現陵)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나무가 곧고 꽃이 없어서인지 충이나 효, 그리고 소수민족의 탄생설화의 소재가 되었다. 아래는 중국 이족, 아미족, 토산족의 이야기다.

이족

천지가 개벽할 태고 시절에 한 죽통에서 사람이 한 명 튀어나왔다. 그의 모습은 원숭이와 비슷했으며, 나오자마자 말을 할 줄 알았다. 아사라 불리는 그는 매우 힘든 생활을 했다. 동굴 속에서 살면서 파초 잎으로 옷을 삼고, 들쥐와 열매로 생활했다.

아미족

그들의 선조는 타우두 도라는 천신이 내려 준 큰 돌 속에서 탄생한 남자와 대나무에서 탄생한 여자가 혼인하여 태어난 것이다.

토산족

옥황상제는 여신 의라아파에게 사람을 만들게 했다. 그녀는 대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연꽃잎으로 폐와 간을 만들었다. 강두(豇豆)로 창자를 만들고, 호로(葫蘆)로 머리통을 만들었다. 구멍을 아홉 개 뚫어 입김을 한 번 불어넣으니, 대나무로 된 사람이 숨을 내쉬면서 걷게 되었다. 이로부터 세상에 사람이 있게 되었다.
(출처: 세상을 바꾼 나무/ 도서출판 다른/ 강판권)

 대나무라고 곧고 바른 스토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죽순처럼 야들야들 부드러운 사랑 이야기도 있다.

죽순같은 사랑이야기

요(堯)임금은 농사꾼이던 순(舜)에게 아황과 여영이라는 두 공주와 함께 왕위를 물려주었다. 열정적인 순임금은 신혼인데도 치수 사업에 열중하여 전국을 돌아다녔다. 두 아내는 남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남편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러나 두 아내는 남편이 죽어 군산의 창오에 묻혔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꽃다운 두 사람은 절망한 나머지 밤낮으로 통곡하다 그만 물에 빠져 죽었다. 중국 군산의 반죽, 바로 얼룩대나무이야기다. 바로 대나무의 얼룩모양은 두 사람이 흘린 눈물이라는 것이다.
(출처: 세상을 바꾼 나무/ 도서출판 다른/ 강판권)

 대나무 안의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중국 반죽고낭의 설화는 일본으로 넘어가서 아름다운 동화가 된다. 알려지지 않은 ‘다케토리 모노가타리’ 라는 작가가 쓴 대나무 이야기다.

대나무를 베어다가 물건을 만들어 파는 어느 노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사누키의 미얏코.
어느 날 대나무를 베러 갔다가 유난히 밑동이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이상히 여겨 다가가 보니 대롱 안에 빛이 나는 아주 작고 귀여운 아이가 있었다.
노인은 “내가 매일 조석으로 돌아보는 대나무 속에 있었던 인연이니 내 자식이 될 사람인 게야.”라며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로 하여금 키우게 하였다. 더없이 어여쁜 아이였다. 너무 작아서 바구니 속에 넣어 키웠다. 이 아이를 발견한 뒤로, 노인에겐 대롱마다 황금이 들어 있는 대나무를 발견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노인은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대나무는 영생, 불변, 절개 등의 의미다. 마을마다 솟대를 세운다. 솟대는 마을을 지키는 신간이다. 솟대는 흔히 대나무로 만드는데 또한 무속 신화인 제석 본풀이에는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 대나무를 상주 막대로 사용한다. 바로 영생이다.

 선죽교의 원래 이름은 선지교였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의 철퇴를 맞고 죽은 후 그가 흘린 핏자국에서 대나무가 솟았고 이후 선지교는 ‘대나무 죽’자가 들어간 선죽교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나 을사조약 때에 민영환이 자결한 곳에서 혈죽이 돋았다는 이야기.

 삼국사기에 실린 어느 장수의 이야기다. 신라에 죽죽(竹竹)이란 장수가 있었는데, 전세가 매우 불리하게 되자 주변에서 항복을 권유했는데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고 끝까지 결사 항전한다.
 “그대의 말이 마땅하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가 나를 죽죽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차가운 날씨에도 시들지 말며,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는 뜻이다. 어찌 죽음이 두려워 살아 항복하겠는가?”

그뿐인가. 흔들리지 않으려는 일침, 죽비도 대나무로 만든다.
아픔보다는 소리가 더 크다. 바로 체벌이라기보다 깨우침이다.

곧음과 비움의 상징으로 오래도록 우리 곁에 서 있던 대나무.
다음 글에서는 그 대나무가 담양의 부엌과 창고, 밥상과 살림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어서 들여다본다.
「우후죽순, 시골 창고를 채우는 다정하고 개미진 담양살이」에서 계속됩니다.


글. 박지현 parkjazz@naver.com

생각이 현실이 되는 재미에 이끌려 1990년대 방송 작가를 시작으로 기획에 발을 들였다.
오랜 시간 지역의 역사, 영화, 미식,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발 디디고 서 있는 로컬의 맛과 멋을
묵묵히 다듬어 세상과 연결하는 단단하고 다정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
로컬이야말로 글로컬이라 믿으며 현재 대중과 연결하는 문화 플랫폼인
‘플레이광주’, ‘플레이제주’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거창한 담론보다 지역민의 삶과 맞닿은 이야기를 발굴해 낼 때 가장 기쁜 담양촌사람 중 한 명.

사진. Pixabay, (재)담양군문화재단
담양군문화재단 웹진 「담양 문화파인더」 | Vol. 11 | ​2026. 6. 15.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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