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문화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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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를 찾는다는 것은 맛집을 탐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견뎌온 시간의 궤적을 공유하는 일이다. 깊은 맛의 기준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그 공간만이 지니는 맛의 깊이를 음미하는 일이다. 전국 팔도 작은 골목의 노포를 찾아내 내일 당장 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막창이 찢어지지 않게 정성껏 소금으로 씻어내던 어머니의 손길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담양 곳곳에 온기를 전하던 진심까지는 단번에 느낄 수 없을 것이다. 60여 년 담양 장터에서 보따리를 이고 다니던 한 여인의 손맛이 담양의 맛으로 뿌리내리기까지, 청운식당에 담긴 삶의 기록을 따라가 볼까.
청운식당의 시작은 1927년생 배서운 여사의 고단한 삶의 여정과 궤를 함께한다. 시집온 뒤 생계를 위해 보따리장사를 시작한 그녀에게 돼지 부산물은 가난한 시절을 버티게 해준 밑천이었다. 당시엔 흔하고 저렴했던 순대와 막창을 보따리에 이고 담양읍 장터를 누비던 그녀의 모습은, 시장을 찾던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장날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싸고 맛있는 집’이라는 명성을 발판 삼아 1960년대 초 시장 안에 작은 점포를 얻었고, 1976년 지금 자리인 담주리 85번지에 「청운식당」이라는 간판을 올렸다. 그녀의 나이는 58세였다. 시장에서의 20여 년은 가난한 시절을 버텨낸 삶의 기반이었고, 사람들에게 그녀의 손맛이 각인된 시간이기도 했다.
‘청운(靑雲)’은 푸르고 맑은 기운처럼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름이었다.
현재 청운식당을 이어가고 있는 박기창(1958) 대표는 어머니의 뒤를 이은 2대 운영자다. 고교 시절부터 식당일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가업에 발을 들였다. 군 복무 3년 외에는 담양을 떠난 적 없이 줄곧 고향에서 생활하면서도 식당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어머니의 연세와 건강,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른 선택지 대신 식당의 맥을 이어갔다. 이제는 둘째 딸까지 합세하여 3대째, 외부 인력 없이 때로는 박 대표의 누나와 남동생까지 함께하며 오직 가족의 정성으로 매일을 채워가고 있다.

담양읍 담주리 어느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청운식당은 60여 년 세월 그 자리 그대로 정감있게 빛나고 있다.
청운식당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암뽕순대’다. 하지만 여기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 있다. 원래 ‘암봉’ 혹은 ‘새끼보’는 암퇘지의 태반 부위를 일컫는 말로, 식감이 부드럽고 풍미가 깊어 예전 어른들이 삶아서 소금에 찍어 먹던 귀한 특수 부위였다.
1980년대 초반, 배서운 여사가 TV방송에 출연했을 당시 제작진이 이 ‘암봉’을 ‘암뽕’으로 잘못 송출했는데, 결국 이것이 ‘암뽕순대’라는 이름으로 전국으로 퍼지면서 마치 순대의 한 종류인 것처럼 여전히 불리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청운식당에서 만나는 순대의 정체는 ‘막창순대’다. 손질이 워낙 까다롭고 비싸서 일반 식당에서는 엄두도 못 내던 막창을 이용해 최초로 순대를 만들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막창순대의 비결은 투박하지만 정직한 손질에 있다. 소금으로 여러 번 문질러 씻어 잡내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배 여사의 전통 방식은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다.
오래된 국밥집에 들어서면 으레 코끝으로 들어오는 특유의 냄새가 없어 물었다.
“사장님, 여기는 어떻게 관리하시길래 돼지고기 냄새가 안 나요?”
이 질문의 비결은 곧 재료를 손질하는 정성이었다. 게다가 쉽게 찢어지는 막창에 속을 채워 순대로 만드는 과정은 섬세한 기술의 핵심이기도 했다. 선지, 찹쌀, 대파, 양파, 콩나물 등 신선한 재료로 꽉 채운 막창순대는 한때 일주일에 1,000접시가 팔려나갈 정도로 담양을 상징하는 별미가 되었다.
그러니까, 암뽕은 순대가 아닌 그 자체로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암뽕순대가 바로 ‘막창순대’인 것이다.

가운데 존재감을 드러내는 큰 접시의 왼쪽에 놓인 것이 암뽕, 오른쪽이 막창순대다.
순대만큼이나 단골들의 사랑을 받는 메뉴는 ‘냄비비빔밥’이다. 놋냄비에 아삭한 상추와 숙주, 잘게 썬 짭조름한 김 그리고 매콤하게 볶은 항정살을 듬뿍 올린 이 메뉴는 화려한 한정식 비빔밥과는 또 다른 장터 특유의 투박한 정을 선사한다. 당시 담양읍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점심시간마다 빠르고 든든하게 한 끼를 챙기던 최고 인기 메뉴였으며, 한때 메뉴에서 사라질 뻔했으나, 단골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다시 살아난 ‘추억의 맛’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전히 대표 메뉴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청운식당은 한때 ‘추어탕 잘하는 집’으로 더 유명했다. 어머니 배서운 여사가 외가에서 보아온 조리 방식과 장흥과 정읍 지역의 풍미를 더한 추어탕은 가을철이면 국밥보다 더 많은 주문이 들어올 정도였다고 한다. 솥밥 대신 공기밥이 나가는 투박한 상차림은 손님 회전이 빨랐던 옛 장터의 리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냄비비빔밥. 실은 필자도 청운식당의 냄비비빔밥이 제일이다.
요즘의 배달문화는 코로나 시기를 건너오며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휴대폰으로 원하는 음식을 빠르게 주문ㆍ결제하고, 라이더들이 빠른 속도로 문 앞에 음식을 전달하며, 음식 용기는 1회용으로 버려진다.
90년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구조였다. 당시엔 식당에 직접 전화로 주문하고, 식당에서는 직접 자전거,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으며, 1~2시간 뒤 빈 용기를 찾으러 다시 동네 한 바퀴를 돌아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일명 철가방과 배달 오토바이. 음식이 오질 않아 언제 도착하냐고 전화하면, ‘이제 막 출발했다’는 말은 고정멘트였다.
청운식당도 초기엔 자전거로 담양읍 곳곳을 오가며 음식을 전했고, 오토바이와 승용차로 배달구역을 넓혀갔다. 특히 주말이나 장날이면 배달이 몰려 온종일 시장과 마을을 오가야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 경영 환경이 달라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로 2018년 배달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는 식당운영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고, 운영방식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청운식당을 운영하는 박기창 대표. 살아온 세월에 크고 작은 풍파와 행복이 교차했을 테지만
하회탈같이 웃는 얼굴에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지금은 아내와 둘째딸과 함께 식당의 대를 잇고 있다.
지금은 없지만, 옛날엔 있었던 문화가 하나 더 있다. 외상 문화. 단골손님으로 드나들면서 외상으로 먹고 나중에 값을 치르는 문화가 흔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무정면에 주둔해 있던 공수부대 장병 중 외상만 남긴 채 다른 근무지로 이동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배서운 여사는 ‘나라 위해 일하는 군인들이니 이해해야 한다’며 넉넉한 인심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지금도 청운식당의 단골들은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끗해진 뒤에도 늘 같은 메뉴를 먹으러 찾아올 정도로, 식당과 손님 간의 끈끈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식당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와도 같다.
청운식당은 담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생활문화 자산이다. 장터에서 출발해 가족의 손끝으로 이어온 전승 구조는 대형화된 현대 외식 산업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2020년 담양댐 방류로 주변 지역이 침수되어 식당 내부가 크게 훼손되었던 시련도 있었지만 어려운 복구 과정을 지나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 지켜오고 있다.
담양 청운식당에서의 따끈한 국밥 한 입은, 어머니의 보따리 속에 담겨 있던 따뜻한 위로와 장터의 역사가 담긴 한 숟갈을 뜨는 것이다.

보글보글 끓여나온 뜨끈한 국밥은 매일같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 한국인의 대표메뉴가 아닐까.
인터뷰ㆍ연구보고서 : ㈜남도다락, 남도학연구소 소장 서해숙
인터뷰 참여ㆍ각색 : 담양군문화재단 문화정책팀장 황진영
「담양의 삶과 기억을 담은 음식문화 연구조사」, 담양군문화재단, 2025.12.
글. 황진영 flat23@damyangcf.or.kr
사진. 양희상(유토픽쳐스)
담양군문화재단 웹진 「담양 문화파인더」 | Vol. 09 | 2026. 5. 4.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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