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문화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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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생활만 하던 내가 담양으로 이사 와서 배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대나무 활용법일 것이다.
돼지고기를 생 대에 넣어 구운 대통구이와 죽순 요리 그리고 대 이파리를 할용한, 음식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 등 말이다. 항아리에 동치미를 담가 대 이파리를 위에 잔뜩 덮어두면, ‘고래기(전라도 사투리. 하얗게 변하는 것을 말한다)’가 끼지 않는다. 이미 여러 차례 그 사실을 증명하였고 드디어 재작년에는 땅에 묻을 김장도 맨 위는 대나무 이파리를 얹었다. 그래서 올해엔 김치 한 포기도 허실 하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나온 대 뿌리는 창가 장식으로, 대나무 숯 한 바구니는 물을 채워 아토피 딸 방의 겨울 가습기로, 심지어 죽순 껍질까지 항균성이 뛰어나 음식 포장으로 쓰면 좋다고 하니 그 쓰임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실제로 내 집에는 대나무로 만든 소품이 꽤 있다. 외국 친구들이 원더풀 하던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배운 가장 실용적인 쓰임이라면 냉동고 공간을 아낄 수 있는 죽순 말리기이다. 많은 죽순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나온 묘안인 것 같은데 6월에 채취한 죽순을 삶아 찢어 햇볕에 하루 말린다. 하루 정도 말리면 꼬들한 정도로 수분이 약간 남는데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는다. 물론 바싹 말려 항아리에 넣어두기도 하는데 먹어 본 결과 반쯤 말린 오징어처럼 살짝 덜 말린 것이 더 맛있었다.
나중에 물에 불려 삶아 낸 것을 무쳐 먹는데 그 쫄깃함이 전라도 사투리로 무척 ‘개미’가 있다. 부드러운 생 도토리묵 맛과 말린 묵 먹는 차이 정도 되려나? 그러나 이 쉬워 보이는 방법이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쉽지 않았다. 40분 이상 삶아야 하는 것을 덜 삶았다가 대나무 조각을 만나기도 하고, 물속에서 한나절 우려내야 하는 것을 몰라 대충 우려먹다 아린 맛에 뱉은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것뿐인가?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해 둔 죽순은 뜨거운 물에 다시 데쳐내어야 하는데 해동한다고 내버려 두었다가 실처럼 풀어져 버리기도 하였다. 말리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볕에 바짝 며칠을 말려야 하는데 비 오는 날을 만나 며칠 어영부영하다 보면 쉰내(변한 냄새)가 나는데 그래서인지 동네 할머니들은 뜨거운 비닐하우스에 넣어 말리는 것을 보았다. 한번은 내 것도 슬쩍 꼽사리 끼워 넣었는데 돌아올 땐 늘 양이 더 늘어 있었다. 내 것이 너무 적으니 본인 것들을 더 얹어 주신 것이다. 하여간 새순 돋는 사 오월, 죽순 오르는 유월까지 보내고 나면 시골 내 창고가 한참이나 풍성해진다.
이런 음식들은 조선시대 문헌 ‘증보산림경제’, ‘임원경제지’ 등에도 실려 있는데 죽순밥, 죽순정과, 죽순나물 등 다양한 죽순 조리법이 담겨 있다. 또한 1800년대의 문헌인 ‘시의전서’ 잡식 편에 죽순 다루는 법이 정리되어 있으니 죽순 요리의 역사는 깊고도 다양하다. 문헌을 들여다보면 우리 선조들이 죽순을 대했던 태도는 단순히 제철 음식을 즐기는 수준을 넘어, 거의 ‘예술’에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지》의 〈정조지〉에는 죽순을 신선하게 보관하고 조리하는 법이 무척이나 정연하게 기록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도 죽순의 ‘아린 맛’을 잡기 위해 쌀뜨물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죽순을 캘 때 겉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로 쌀뜨물에 푹 삶아내면, 특유의 아린 독성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죽순 고유의 구수하고 달콤한 풍미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사대부가의 명문 요리책인 《증보산림경제》에는 봄날의 입맛을 돋우는 다채로운 죽순 조리법이 향기롭게 실려 있다.
죽순밥: 갓 따온 죽순을 얇게 저며 참기름에 달달 볶은 뒤, 밥을 지을 때 쌀 위에 얹어내던 별미다. 밥이 익어가면서 대나무 향이 밥알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반찬 없이 양념장 하나만으로도 완벽한 봄 한 그릇이 되었다.
죽순정과: 삶은 죽순을 꿀이나 조청에 조려내어 쫀득한 식감과 달콤함을 살린 과자다. 아삭한 죽순이 꿀을 머금어 젤리처럼 변하는 이 조리법은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다과상에 빠지지 않았다.
죽순채: 삶은 죽순과 미나리, 숙주, 고기 등을 가늘게 채 썰어 초고추장이나 겨자즙에 새콤하게 무쳐내던 음식이다. 한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 나른해진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 최고의 계절식이었다.

1800년대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 이르면 죽순을 다루는 법이 더욱 현대적이고 정교해진다. 죽순을 삶아 응달에 말려두었다가 겨울철 정월 대보름에 나물로 볶아 먹는 법이나, 생선 찌개와 고기 볶음에 부재료로 넣어 다른 식재료의 잡내를 잡고 감칠맛을 더하는 비법 등이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처럼 죽순은 그 자체로 훌륭한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전라도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홍어무침이나 부드러운 돼지고기 수육 곁에 슬그머니 놓여도 주변의 맛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최고의 조연이 된다. 입안에서 아삭하고 경쾌하게 터지는 그 특유의 식감과 은은하게 감도는 대나무의 잔향은, 수백 년 전 선조들의 밥상에서 시작해 오늘날 내 시골집 가마솥 앞까지 참으로 깊고도 끈끈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죽순은 자라나는 속도만큼 신선도도 빨리 떨어진다. 쉽게 말해 금방 상한다는 말이다. 나 역시 삶아 두고 냉장실에 두었다가 상해서 버린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따낸 것을 바로 삶아 냉동실에 보관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무엇보다 죽순은 따낸 상태로도 성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죽순 안의 단맛을 가져다 쓴다. 간단히 말해서 맛이 점점 떨어진다는 뜻이다. 시장에서 생죽순을 사 와서 삶았는데 맛이 별로 없더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딴 지 며칠 된 것이거나 아이 키만큼이나 자란 죽순의 윗머리만을 베어낸 것일 확률이 높다.
아침에 따려던 죽순을 깜박하고 하루만 넘어가면 내일엔 그만큼 자라 있는데 아까워서 그렇게라도 따는 분들도 보았다.
자라는 속도가 나와서 이야기인데 중국 무림에서는 무술을 잘하고 싶으면 죽순이 날 때부터 한 달 동안, 죽순 뛰어넘기 연습을 매일 하라고 권한다. 그것을 완성하면 고수가 된다고 말이다. 대나무 한 달이면 그 키가 다 자라니, 사실 인간의 한계로는 불가능하다. 믿거나 말거나 무협지 속의 이야기일 것이나 왠지 상상력 돋는 이야기였다.
한때 담양군은 대나무로 먹고살았다. 지금도 대나무의 고장으로 스토리텔링하는 마을이다. 우선 대나무 숲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 대나무 숲 1헥타르당 연간 약 30톤가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일반 나무의 4배에 달하는 양이다. 소나무나 참나무 같은 일반 수목들이 수십 년에 걸쳐 느릿느릿 숨을 쉬며 지구를 달랠 때, 대나무는 특유의 폭발적인 성장 에너지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대기 중의 탄소를 빨아들이고 맑은 산소를 뿜어낸다.
빽빽하게 들어선 초록 차양이 매 순간 거대한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대나무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 온몸을 감싸는 청량하고 서늘한 기운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일반 숲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이온을 방출해 내는 대나무의 과학적 생태가 우리 몸을 먼저 깨우는 덕분이다. 인간에게 아낌없이 살림살이를 내어주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지구의 무거워진 숨 망울까지 가장 부지런히 닦아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고마운 숲이 어디 있을까.

마지막으로 대나무의 생명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대나무는 땅속줄기를 가진 식물이다. 여러 그루로 보이지만, 대나무 숲이 실제로는 단 몇 개의 개체인 경우가 많다. 땅속에서 발아하여 위로 솟구치는 것이다. 발아 개체를 모죽이라 하는데 그 개체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나무 하나를 베어낸다고 해서 숲이 사라지지 않는다. 내년엔 더 많은 죽순을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양 사람들에게 대나무는 죽세공품이 인정받던 예전엔 ‘장한 것’이었다가 지금은 파내도 파내도 사라지지 않는 ‘징한 것’이 되고 말았다. 내게도 대나무는 ‘징한 것’이며 또한 ‘장한 것’인데 어느 날의 기록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곳 사람들에게 대나무란 그저 ‘징헌 것’이다.
봄. 잠깐만 한눈팔면 여기저기 솟아 나오는 죽순, 마당에서도 마루 밑에서도, 심지어 부엌 흙바닥에서도, 파내도 파내도 줄지 않으며,
올 한 해 베어내면 내년 죽순 농사는 더 잘 되는 법이니, 대밭을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뿌리가 깊어 꼿꼿하다고, 그래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건 말짱 모르는 소리다. 비바람에 납죽 엎드렸다 눈비에도 바짝 기는 게 대나무다.
삼십 센티만 파내도 뿌리를 보이는 게 대나무며 톱으로 몇 번 슬금슬금 밀기만 해도 베어지는 게 대나무다.그런데 이 대나무가 ‘징한 것’이 된 사연?
바로 서로를 꽁꽁 엮고 있는 뿌리에 있다. 대나무 한 뿌리 캐내려 용을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서로 묶여 땅속 천 길을 뻗어 있는 뿌리를.
‘우리가 가진 게 뭐 있어요. 그저 서로에게 힘이 되자고요.’
뿌리를 묶으며 서로를 북돋는 목소리, 비바람에 엎드렸다가도 번쩍 일어나는 힘!‘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욕심낼 게 뭐 있어요. 그저 비우고 살자고요.’
안을 비운 지혜! 부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다시 일어나는 지혜.그저 혼자 살기도 비좁은 한 뼘 땅에 옆자리를 내주며 이웃을 만들고, 함께 흔들리며 함께 눕고 한 뿌리로 일제히 죽순을 밀어 올린다.
어느 누구도 대적하지 못할 대밭의 힘은 그것에 있었다.왕대는 왕대대로 분죽은 분죽대로, 신우대는 신우대대로 그저 어울리며,
‘누구는 왕이라 이만큼, 누구는 장차 악기가 될 몸이니 이만큼’
다투고 싸우는 일 없이 왕대 옆으로 분죽이, 분죽 둘레로 신우대가 자라니, 그저 대나무 태평 세상.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왜 이리 혼탁한지 왜 이리 지저분한지’
인간들의 소식을 들었는지 아니면 대숲 속에서 벌어진 은밀한 뒷거래를 보았는지 일제히 꽃을 피운다.뭐 한 세상 별거더냐. 친구들아, 우리 꽃 한 번 피우고 가자!
축제다. 그러나 죽음의 축제!
우리를 보아라. 가는 날까지 아름다워야 하느니라. 때론 꽃 한번 피우는 일에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법.
태어나 단 한번, 처음으로 꽃을 피우고, 유서를 꽃으로 쓰며, 세상에 경종을 꽃으로 울리며 일제히 죽어간다.그 징하던 대밭이 참 징허게도 목숨을 버린다. 한 뿌리로 엮어 한 뿌리로 살다 한 뿌리로 죽어간다.
그러고 보니 ‘징헌 것’의 정체를 알 것도 같다. 어떻게 만개의 나무가 만개의 마음이 아니라 한 마음으로 산단 말인가?
만개의 목숨을 한목숨처럼 버리며.

글. 박지현 parkjazz@naver.com
사진. (재)담양군문화재단, 박지현
담양군문화재단 웹진 「담양 문화파인더」 | Vol. 15 | 2026. 7. 29.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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